서론: 텅 빈 지갑과 아이의 눈물, 외면받는 현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에게는 이 말이 너무나도 먼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많습니다. 특히, 마땅히 받아야 할 양육비를 받지 못해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경우는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2년 전인 2024년 1월,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문을 닫았던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 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배경에는 촘촘하지 못한 사회 안전망과 실효성 없는 공적 제도의 냉혹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본론 1: 2년 만의 귀환, ‘배드파더스’가 마주한 현실
2024년 1월, ‘배드파더스’ 운영자는 대법원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는 개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났다는 사법부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난 지금, 사이트는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법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법과 제도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절박한 문제에 대한 외침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사이트 폐쇄 이후에도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한부모 10명 중 7명은 여전히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체납액이 최고 3억 원에 달하는 충격적인 사례도 존재합니다. 이는 양육비 문제가 단순히 몇몇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넘어, 아이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심각한 사회 문제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공적 제도의 한계: 있으나 마나 한 명단 공개와 선지급제
정부 역시 이 문제를 방관한 것은 아닙니다. 여성가족부는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공개된 명단에는 얼굴 사진이 빠져있고, 직업은 ‘회사원’, ‘자영업’ 등 모호하게 기재되어 있어 특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로 인해 동명이인이 피해를 보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발생하며, 채무자에게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채무자에게 받아내는 ‘양육비 선지급 제도’ 역시 현실의 벽 앞에 무력했습니다. 한 아이당 월 20만 원이라는 지원금은 정부가 정한 최저 양육비 기준액인 62만 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구멍 난 항아리에 물 한 컵을 부어주는 것과 같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정책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본론 2: 사적 제재 vs 공적 이익, 끝나지 않는 논쟁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양육자들이 민사 소송이나 형사 고소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복잡한 소송 절차와 비용은 물론, 어렵게 승소하더라도 채무자가 재산을 은닉하면 강제 집행이 불가능합니다. 형사 처벌 역시 대부분 벌금형에 그쳐, ‘벌금만 내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실질적인 양육비 이행을 유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배드파더스’의 재개는 이러한 정책의 빈틈과 법적 제재의 미흡함 속에서 터져 나온 필연적인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이들의 활동을 ‘정의 구현’이라며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적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시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구책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사적 제재’라는 칼날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닙니다. 법적 절차를 무시한 신상 공개는 무고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으며, 명예훼손이라는 또 다른 법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는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배드파더스’의 재개는 우리 사회에 ‘정의를 위한 불법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매우 무겁고 어려운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습니다.
결론: 이제는 사회가 답해야 할 시간
‘배드파더스’의 귀환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더 이상 개인 간의 채무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아이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한 무책임한 행동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지, 그리고 정책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합니다.
단순히 ‘배드파더스’를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넘어, 실효성 있는 공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채무 불이행이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훔치는 ‘아동 학대’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배드파더스’의 재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까요, 아니면 법치주의를 흔드는 위험한 사적 제재일까요? 여러분의 깊이 있는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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