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끝나지 않은 전쟁, 돌아온 그들

안녕하세요. 자녀의 양육비를 받지 못해 생계의 위협을 받는 한부모 가정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선 뉴스가 아닙니다. 수년간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많은 이들의 눈물과 한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2024년, 법원의 판결로 폐쇄되었던 한 사이트가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신상을 공개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배드파더스’가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양해들)’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왜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위험한 길을 다시 선택했을까요? 오늘 포스팅에서는 그 배경과 우리 사회가 마주한 불편한 진실을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1. 2년 만의 부활, ‘양해들’이 돌아온 이유
2021년,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 씨는 대법원으로부터 ‘사실적시 명예훼손’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한 행위가 공익적 목적이 있더라도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판결로 사이트는 문을 닫았고, 양육비 문제는 다시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2024년, 그들이 ‘양해들’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정부의 법적·행정적 조치가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절박한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2. 작동하지 않는 공적 시스템: 정부 제도의 명백한 한계
‘양해들’의 부활이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다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공적 시스템의 실패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부는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마련했지만, 현실에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의 신상공개, 왜 힘을 쓰지 못하는가?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 역시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결정적인 한계를 가집니다. 바로 ‘얼굴 사진’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름과 생년월일, 일부 주소만 공개되다 보니 동명이인 문제도 발생하고, 미지급 당사자를 특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주변인들을 통한 사회적 압박이라는 신상공개의 본질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형사처벌과 선지급제,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
2021년부터는 양육비 미지급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형사처벌 조항도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실정입니다. 미지급자 입장에서는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에 달하는 양육비를 지급하는 것보다 몇백만 원의 벌금을 내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계산이 서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미지급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양육비 선지급제’ 역시 미지급액 전액을 보전해주지 못하며, 구상권 회수율 또한 저조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처벌을 감수하겠다”: 운영자의 절박함과 오해
‘양해들’ 운영자 구본창 씨는 과거 29건의 명예훼손 소송을 겪었음에도 다시 사이트를 연 이유에 대해 “아이들이 굶는 절박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얼굴과 이름, 직업까지 공개하는 방식이 양육비 지급을 유도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이었다고 강조합니다. 법적 처벌의 위험보다 당장 아이들의 생존권이 더 시급하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한편, ‘배드파더스’라는 이름 때문에 아빠의 신상만 공개한다는 오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사이트는 성별 구분 없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 모두를 대상으로 하며, 통계적으로 남성 미지급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실제로 양육비가 해결되면 즉시 명단을 삭제하는 절차를 통해 무분별한 ‘마녀사냥’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4. 사적 제재인가, 정책의 빈틈을 메우는 행위인가
결국 ‘양해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거대한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신상 공개는 분명 ‘사적 제재’에 해당하며, 잠재적인 인권 침해의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개인이나 단체가 사적인 판단으로 타인을 심판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법과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마지막 호소를 외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공적 시스템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겠다고 나섰을 때, 이를 무조건 비난만 할 수 있을까요? ‘양해들’의 부활은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아이들의 생존권 문제를 방치한 결과가 낳은, 우리 사회의 아픈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결론: 이제는 사회가 답해야 할 때
‘양해들’ 사이트의 재등장은 단순히 한 개인의 돌출 행동이 아닌,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적 시스템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다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 즉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의 절박한 현실에 우리는 더 주목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한 지루한 법적 공방과 실효성 없는 제도 개선 논의가 계속되는 동안,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