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이상과 현실의 거대한 괴리, 유럽의 에너지 딜레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유럽은 환경 보호와 안전을 기치로 내걸고 원자력 발전소를 잇달아 폐쇄하며 신재생에너지 시대를 선도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유럽의 에너지 지도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때 탈원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국가들이 앞다투어 원자력 발전으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념과 이상을 외치던 유럽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게 되었을까요? 이 극적인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생존’이라는 냉엄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탈원전은 실수였다’ – 상징적이었던 독일의 뼈아픈 자기반성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은 바로 독일의 태도 변화입니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강력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며 2023년 4월, 마지막 남은 원전 3기의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에 탈원전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조치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독일 총리는 공개적으로 원전 폐쇄가 ‘실수’였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책적 후회를 넘어, 탈원전이라는 이념이 현실의 벽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고백이었습니다.
독일의 이러한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원전 가동 중단 이후 독일은 심각한 에너지 부족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기 요금 문제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안정적인 기저 전력원의 부재는 고스란히 산업 경쟁력 약화와 민생의 고통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념만으로는 국가의 에너지 안보와 국민의 삶을 지킬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이념보다 생존: 유럽이 다시 원전을 부른 세 가지 이유
독일뿐만 아니라 스웨덴, 이탈리아 등 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친원전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이 이처럼 약속이라도 한 듯 원자력으로 돌아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에너지 안보의 붕괴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밸브를 잠그며 에너지를 무기화했고,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에너지 공급망이 특정 국가에 종속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온몸으로 체감한 것입니다.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이고 주체적인 에너지원 확보, 즉 ‘에너지 안보’가 국가 생존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원자력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신재생에너지의 현실적 한계와 경제성 문제
물론 유럽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좌우되는 간헐성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맑은 날과 바람 부는 날에는 전력이 남아돌지만, 흐리고 바람 없는 날에는 전력 부족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정한 구조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지만, 아직 기술적, 비용적 한계가 명확합니다. 안정적인 산업 가동과 국민 생활을 위해서는 24시간 365일 꾸준히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저 전력이 필수적이며, 이 역할에 원자력만큼 효율적인 대안은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입니다.
셋째,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역설적이게도, 유럽이 원자력으로 회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탄소 중립’ 목표 때문입니다. 탈원전 이후 에너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석탄이나 LNG 같은 화석연료 발전소 가동을 늘리면서 오히려 탄소 배출량이 증가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원자력은 발전 과정에서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대표적인 청정에너지원입니다. 따라서 기후 변화 대응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원자력 발전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유럽 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결론: 이념을 넘어선 현실주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유럽의 극적인 ‘친원전 유턴’은 에너지 정책에 있어 이념이나 이상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이 ‘환경 이념’에서 ‘국가 생존’과 ‘에너지 안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완전히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기반 없이는 경제 성장도, 국민의 안락한 삶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운 셈입니다.
물론 원자력 발전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닐 것입니다. 안전 문제와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안보가 곧 국가 안보인 시대, 유럽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구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유럽의 극적인 정책 전환을 보며, 여러분은 미래 에너지 정책이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정적인 공급, 경제성, 아니면 환경 보호일까요? 여러분의 깊이 있는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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